
발효식품에 대해 알아보다 보면 '코지'라는 단어를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일본의 미소, 사케, 간장 같은 발효식품을 이야기할 때 코지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처음에는 코지를 단순히 일본식 누룩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지는 단순한 재료 이름이라기보다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효소를 이용해 원료의 성분을 변화시키는 발효 시스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코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미생물이 바로 Aspergillus oryzae와 같은 코지곰팡이다. 이 미생물은 곡물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효소를 만들어내고, 이 효소들이 전분과 단백질 등을 분해하면서 이후 발효가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코지균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1. 코지균은 전분을 분해해 발효가 시작될 수 있도록 돕는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물에는 전분이 많이 들어 있다. 전분은 포도당이 여러 개 연결된 커다란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그대로는 다른 미생물이 쉽게 활용하기 어렵다.
코지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해 효소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으로 아밀라아제 계열 효소는 전분을 더 작은 당류로 분해하는 데 관여한다.
쉽게 표현하면 코지균은 곡물 속에 들어 있는 커다란 영양분을 미생물이 이용하기 쉬운 작은 단위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코지균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코지균이 직접 우리에게 필요한 맛을 만들어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에서 다른 미생물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발효의 재료를 준비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분이 당으로 분해되면 효모와 같은 미생물이 그 당을 이용할 수 있다. 사케 같은 발효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알코올 생성과 연결된다.
즉 코지균은 발효 과정에서 일종의 '첫 번째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곡물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는 시작하기 어려운 발효를 효소를 통해 한 단계씩 풀어주는 것이다.
2. 전분뿐 아니라 단백질도 분해해 맛의 깊이를 만든다
코지균의 역할을 전분 분해에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절반 정도만 이해한 셈이다.
코지균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여러 효소도 만들어낸다. 대표적으로 프로테아제 계열 효소가 있으며, 단백질을 더 작은 펩타이드와 아미노산 형태로 분해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이 과정은 발효식품의 맛과 향을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가 음식에서 느끼는 감칠맛에는 여러 성분이 관여하는데,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 역시 맛의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코지균을 단순히 '곡물을 발효시키는 곰팡이'라고 표현하기보다 곡물의 숨겨진 맛을 꺼내는 미생물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원래 쌀이나 콩 안에 존재하던 성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과 효소의 작용을 통해 우리가 맛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발효식품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요리를 할 때는 소금이나 설탕, 간장 같은 조미료를 추가해서 맛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발효에서는 새로운 재료를 계속 추가하지 않아도 원재료 안에 있던 성분을 다른 형태로 바꾸면서 맛의 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발효가 깊어질수록 음식의 맛이 복잡해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 원리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3. 코지균이 만든 효소가 발효식품의 개성을 결정한다
코지균의 역할을 이해하면 미소, 사케, 간장 같은 발효식품이 왜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지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효 과정에서는 어떤 원료를 사용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떤 미생물이 관여하는지, 얼마나 많은 효소가 만들어지는지, 온도와 수분은 어떤지, 얼마나 오랫동안 발효시키는지 등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코지균을 이용한다고 해서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쌀을 기반으로 하는 코지와 콩을 활용하는 코지는 원료 자체의 성분이 다르다. 그러면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영양분도 달라지고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맛과 향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코지를 하나의 '맛 제조기'라고 생각하기보다 원료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도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코지균이 새로운 맛을 무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료 속에 있던 전분과 단백질 등을 분해하면서 숨어 있던 성분들이 드러나고, 이후 다른 미생물의 활동까지 이어지면서 복합적인 풍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발효식품의 맛은 단순히 재료의 맛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원료 + 미생물 + 효소 + 시간 + 환경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는 편이 훨씬 흥미롭다.
그리고 이것은 38편에서 살펴본 누룩 발효와도 연결된다. 누룩과 코지는 사용하는 지역과 제조법, 미생물 구성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곡물의 성분을 효소로 분해해 이후 발효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공통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결국 코지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눈에 보이는 알코올이나 맛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미생물이 활동할 수 있도록 곡물을 먼저 변화시키고, 원료 속 성분을 발효 가능한 형태로 바꿔주는 것에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
마무리
코지균에 대해 알아보고 나니 발효식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된장이나 사케, 간장 같은 완성된 음식만 보지만 그 시작점에는 곡물과 콩 속 성분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미생물의 활동이 있다.
코지균은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당의 생성을 돕고,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통해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관여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원료는 이후 다른 미생물의 발효와 연결되면서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나는 코지균의 역할을 알아보면서 발효란 결국 '재료를 더하는 기술'보다 '재료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기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이나 콩 자체는 평범해 보이지만 미생물이 그 안의 성분을 분해하고 변화시키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우리가 발효식품에서 느끼는 깊은 맛은 어쩌면 원재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가능성이 미생물의 도움으로 드러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에 미소나 사케, 간장처럼 코지가 사용된 발효식품을 접하게 된다면 단순히 '발효된 음식'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코지균이 어떤 일을 했을지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음식의 성격을 바꾼다는 사실 자체가 발효의 가장 신기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